평소 조용하고 질서를 잘 지키는 일본인들이 왜 벚꽃 시즌만 되면 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고성방가를 일삼을까요? 도쿄에서 살 때 맨션앞이 벚꽃명소 공원이었는데 아침일찍 나가보면, 벌써 크고작은 파란색시트들이 여기저기 펼쳐져있어 "이게 뭐지?" 하고 깜짝 놀랐던적이 있어요. 가장 신입사원이 출근하면서 '바쇼토리(자리차지)'한 것이라고 해요. 신입사원끼리의 경쟁도 치열하다는 풍문! 하루종일 펼쳐져있다가 저녁이 되면 갑자기 떼지어 나타나 술먹고 노래부르며 고성방가가 밤늦게까지 이어지는걸 보고, "이 사람들 뭐지?" 했었어요. 이중적인 행동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일본 사회 특유의 문화적 코드와 분위기가 숨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벚꽃놀이 시즌에 변화하는 일본인의 행동과 그 이유, 그리고 사회 전반의 민폐 인식에 대해 알아봅니다.
평소엔 조용한 일본인, 벚꽃놀이만 되면?
일본 사회는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마라’는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하철에서는 이어폰 소리마저 조심스럽고, 길거리에서는 웬만하면 통화를 자제하며, 단체 행동보다는 조용한 질서를 중시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벚꽃 시즌(하나미)만 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공원마다 이른 아침부터 자리 선점을 위한 블루시트가 깔리고, 직장 동료나 친구들이 모여 술을 마시며 노래하고 떠들며 늦은 밤까지 즐깁니다. 평소에는 생각도 못할 큰 스피커나 무선 마이크를 들고 나오는 사람들도 있고, 정숙한 일본 사회에서 보기 힘든 고성방가도 이때는 꽤 흔한 풍경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일본에서 하나미는 단순한 ‘꽃놀이’가 아닙니다. 오랜 시간 직장과 사회에서 억눌린 감정을 한 번에 해소할 수 있는, 사회적으로 허용된 방종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1년에 단 몇 주뿐인 벚꽃 시즌에는, 일본 사회도 "이번만은 괜찮아"라는 일종의 ‘면허’를 주는 셈입니다.
왜 그 민폐는 ‘통과’되는 걸까?
일반적으로는 "타인을 불편하게 하면 안 된다"는 문화가 강한 일본에서, 하나미 시즌의 행동이 어느 정도 용인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전통적 의미의 ‘하나미’ 문화
벚꽃놀이는 에도시대부터 이어져온 일본 고유의 전통입니다. ‘일시적인 아름다움’, 즉 벚꽃의 덧없음과 함께 즐기는 문화로서, 그 자체가 사회적 정서로 자리잡았습니다. 역사적으로도 관공서나 대기업에서는 하나미를 일종의 회식 문화처럼 운영해 왔기 때문에, 단순한 놀이 이상의 의미가 부여된 거죠.
2. 일상 속 억눌림의 해방구
일본은 집단 속에서 조용히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미덕인 사회입니다. 직장, 학교, 대중교통 등 모든 공간에서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규칙입니다. 그러다 보니 감정을 표출하거나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기회는 극히 제한적이죠.
하지만 하나미는 그 규칙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합법적 탈선 시간’입니다. 모두가 그 순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일부 민폐적인 행동조차도 ‘이해 가능한 범위 내’로 묶입니다. 일종의 사회적 면책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죠.
일본 사회는 이걸 어떻게 보고 있을까?
사실 모든 일본인이 이런 분위기를 100% 받아들이는 건 아닙니다. 매년 하나미 시즌이 되면 SNS에서는 “왜 이렇게 시끄럽게 하나”, “쓰레기 좀 치우고 가자” 같은 비판도 적지 않게 올라옵니다. 특히 젊은 세대나 혼자 조용히 벚꽃을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건 더 이상 문화가 아니라 민폐다"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죠.
지자체들도 이에 대응해 몇 년 전부터 공원 내 음주 제한, 스피커 사용 금지, 쓰레기 분리배출 강화 등의 규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하나미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여전히 ‘암묵적 허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일본 사회는 ‘질서와 해방’이라는 두 문화의 충돌을 매년 봄마다 겪고 있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미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기다려지는 계절’로 남아 있고, 잠시나마 사회적 규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결론: 그들도 사람이다
조용하고 질서 정연한 일본인도 결국엔 감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평소엔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억누르지만, 벚꽃이 피는 계절에는 잠시 마음의 벽을 내려놓습니다. 하나미는 일본 문화의 이중성과 그 속의 인간적인 면모를 동시에 보여주는 독특한 현상입니다. 우리가 일본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바로 이런 '틈'을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시간이 쌓여 추억이 되고
일본 도쿄살이하다가 지금은 오사카살이 합니다. 일본을 테마로 여러 여행과 역사 문화 정보 일상이야기 나눌게요. 더불어 함께 행복해요~소중한 구독, 공감과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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