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지운 복합문화공간 - 간사이 와카야마 시민도서관이 보여주는 일본 공공시설의 미래

와카야마 시민도서관은 스타벅스와 도서관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개방형 복합문화공간입니다. 도서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세대가 공존하는 설계, 그리고 시민의 일상에 녹아든 모습을 직접 경험하고 정리했습니다.

와카야마시 스타벅스 내부 모습

■ “커피 마시러 갔는데 도서관이었다”

와카야마시에 도착해 칸데오 호텔에 짐을 풀고, 와카야마성을 한 바퀴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꽤 오래 걸었더니 목이 말랐는데 마침 큰 스타벅스가 보여 반가운 마음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습니다. 거리를 걸어보며 조금씩 쇠퇴해져가는 도시 느낌이었는데 이곳 스타벅스는 규모가 꽤 컸고, 층고도 높고, 매장 중앙에 도서관처럼 생긴 서고들이 쫙 펼쳐져 있고, 그 한가운데로는 기다란 에스컬레이터가 2층까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올라가보고 싶어져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는데, 그곳은 정말 도서관이었습니다. 와카야마 시민도서관이었습니다.
알고보니 이름부터가 시립이 아니라 시민이 주인공인 시민도서관이라는 것도 아주 인상적이었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츠타야와 함께 있는 와카야마시민도서관

■ 제재 없는 개방형 공간 – 그냥 ‘들어가서’ 누리는 곳

더 놀라운 건, 이곳은 어떤 입장 절차도 없이 그냥 ‘훅’ 들어갈 수 있다는 거였어요. 도서관 직원이 따로 지키고 있지도 않고, 별도의 출입구나 경계도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도시 속 열린 거실’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무심히 올라간 그 에스컬레이터는 결국 4층까지 이어지는 복층형 도서관의 중심축이었고, 각 층은 자연광으로 가득하고, 책은 층마다 가득했고, 사람들은 정말 자유롭게 그 공간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 4층에서 본 광경 – 어린이 놀이터 옆 먹는 공간?

4층에 도착했을 때 저는 진짜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들이 뛰노는 어린이 전용 키즈존 옆에 아예 오픈형 식사 공간이 있었습니다.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도서관이라니요. 일본에서?

와카야마시민도서관 4층 어린이도서관

그리고 내려오며 봤던 풍경은 정말 인상 깊었어요. 책의 양은 방대한데, 분위기는 전혀 엄숙하지 않았고, 음료를 마시며 편하게 책을 읽는 사람들, 교복 입은 중고등학생들이 제 집마냥 책과 음료들을 올려놓고  공부하는 모습, 전기 콘센트가 설치된 창가 자리에서 뭔가 업무중인 사람들, 조용히 신문이나 책, 또는 폰을 보다가 소파에 기대 쉬고 있는 노인들…
이 도서관은 세대를 가리지 않고, 목적을 제한하지 않고, 그저 모든 사람을 받아주는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와카야마시민도서관 서고들

■ 이 도서관은 원래 이런 곳이더라

나중에 찾아보니, 이 도서관은 단순한 공공도서관이 아니었습니다. 2020년 7월에 새롭게 개관한 와카야마 시민도서관(和歌山市立図書館)으로, 와카야마시와 츠타야서점 운영사인 CCC(Culture Convenience Club)가 공동으로 설계하고 운영하는 복합문화시설이었습니다.
1층에는 스타벅스와 츠타야 서점, 2~4층은 도서관 공간으로, 열람실·잡지코너·아동서관·학습공간·가족존·신문코너·노인 휴게공간 등 다양한 구역이 층마다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든 좌석에는 전기 콘센트가 있으며, 각자 편한 자세로 머물 수 있는 소파·테이블·1인좌석이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 기본 정보

• 이름: 和歌山市民図書館 (Wakayama Civic Library)
• 위치: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
• 오픈일: 2020년 7월 18일
• 운영 주체: 와카야마시 × CCC(카루이자와 츠타야서점 등으로 유명한 Culture Convenience Club 주식회사)

와카야마시민도서관 에스컬레이터와 계단( 견학 온 초등학생들이 보입니다)

■ 특징 및 구조

1층 – 스타벅스 & 츠타야서점

• 입구에서 바로 스타벅스와 츠타야 서점이 결합된 형태로 이용 가능.
• 음료를 사서 그대로 도서관으로 올라갈 수 있으며, 서점 공간에서도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음.
• 전반적으로 카페와 도서관의 경계를 허문 ‘북카페형 도서관’.

"책과 커피를 즐겨주세요" 라고 써 있는 도서관

2~4층 – 도서관 본관

• 2층: 일반 열람실, 학습 공간, 청소년/성인용 서적
  • 중고등학생들이 교복 입고 와서 자습하는 모습이 흔함.
  • 전 좌석에 콘센트, 개인 조명 등 노트북 학습 최적화.
• 3층: 잡지·만화 코너, 멀티미디어 공간
  • K-POP, 한국드라마, 여행, 취미생활 등 다양한 장르의 최신 일본 잡지 다수 구비.
  • 여러 형태의 자습실과 열람실, 그리고 멀티미디어 이용공간
• 4층: 키즈존 & 푸드코트 형태의 휴게 공간
  • 아이들을 위한 계단형 그림책 공간, 밝고 안전한 키즈 라운지.
  • 일본 공공도서관으로선 이례적으로 음식 섭취 가능 공간 마련.
  • 유모차, 아기 동반 부모들을 위한 육아 지원 공간도 넉넉함.

와카야마 시민 도서관 서고들

■ 건축 및 디자인 컨셉

• 설계사무소: NIKKEN SEKKEI(일본 대표 설계사)
• 디자인 키워드: 개방감, 복합성, 지역 커뮤니티 중심
• 내부는 목재 질감을 살린 따뜻한 분위기, 복층 서가와 통유리 외벽으로 개방감을 강조.
•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지 않아도 되고, 잠깐 쉬어가는 공간이 되어도 좋다’**는 시민 친화적 운영방식.

■ 와카야마 시민들의 반응과 활용

• 지역 학생들에게는 스터디 카페 이상의 열린 학습공간.
• 가족 단위 방문도 많아, 도서관이 가족 문화공간의 역할을 함.
• 스타벅스+서점+도서관의 조합으로 인해,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인스타 명소로 회자.
• 실제로 “책을 읽기 위해”뿐 아니라 “그 공간을 누리기 위해” 오는 이용자 비율이 상당히 높음.

와카야마의 유명한 여성작가 '아리요시 사와코'를 기리는 작가의 방

■ 기타 참고 포인트

• 운영 시간: 매일 9:00~21:00 (일부 공간은 20:00 마감)
• 무료 Wi-Fi 제공, 콘센트 좌석 다수
• 회원 가입 없이 열람 가능, 일부 예약 자료/대출은 카드 필요
• 주차장 있음, 와카야마역에서도 도보 5~7분 거리

■ 마무리 감상

와카야마 시민도서관은 일본 전통의 엄격한 도서관 이미지를 깨고, 현대적인 문화복합공간으로 변신한 대표 사례라고 하네요. 도시 속에서 가장 자유롭고 따뜻한 공공공간이었고, 일본의 공공시설이 어디까지 변화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사례였습니다. 변화를 싫어하는 일본이 변하고 있는 것을 도서관에서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고령화를 고려해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저상 책장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으며, 아이들을 위한 키즈존, 보호자를 위한 휴게 공간, 학생들을 위한 독립 학습실까지 갖춘 다세대 복합형 설계가 돋보입니다.
무엇보다 감시도, 제약도, 불편함도 없었던 이 도서관의 경험은, ‘공공’이라는 말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진심으로, 이런 도서관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칸데오 호텔 12층 대욕장의 노천탕에서 느긋하게 도시를 보며, 도시마다 생존을 위해 변화하려고 노력하는구나 싶었고,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미래를 인도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도 다다오의 어린이 도서관과, 일본의 여러 유명해진 도서관에 대해 좀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 열린 지식의 풍경 – 일본 신공공도서관 기행

일본 각지에 새롭게 태어난 도서관들. 건축, 철학,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시리즈입니다.

• 1편 – 와카야마 시민도서관
• 2편 – (예정)안도 타다오의 아이노카제 어린이 도서관
• 3편 – (예정) 삿포로 모이와산 도서관
• 4편 – (예정) 나가사키 시민도서관
• 5편 – (예정) 아리타 마을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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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쌓여 추억이 되고